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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영의 악의기원 책표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고

 

처음 이 책을 맞이 했을 때 두께에 놀랐다. 적어도 4센티미터에 달하는 두께의 책이 왜 2권으로 나눠져서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한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더 끌렸고, 그 작가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몇 편의 책을 세상에 내고 이것을 남기고 떠났는지에 대해서...

 

사실 책을 읽었지만, 소설이었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냥 이런 세상을 상상한 작가였구나 하는 정도였다. 요즘 들어서 몇편의 책들이 가상의 세계, 또는 미래의 세계를 다루고 있었다. [The giver]가 그랬고, [hunger game]이 그랬다. 미래의 세상은 우리의 세계보다는 더 비관적이다. [The giver]는 우리나라 소설로는 기억전달자라는 이름으로 변역이 되었고,  [hunger game]은 이름 그대로 헝거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변역이 되었다.

 

기억전달자에서는 계급이 없지만, 아주 통제되어있는 사회였고, 헝거게임의 경우 계급이 존재하지만, 더 많이 통제되어있는 사회였다. 다윈영의 악에 기원 역시 계급이 있는데, 이는 계급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각 영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수준의 옷을 입고, 집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수준이 다르다. 사회분위기 자체도 다르다. 하위 세계로 갈수록 낡고, 오래되고 슬럼화되어있는 풍경이 묘사된다. 이 각각의 사회는 서로 이동이 거의 없으며, 이 공간을 특별한 이유 없이 벗어나기는 힘들다. 하위의 단계로는 갈 수 있지만, 상위의 그룹으로는 이동하기 힘들다. 헝거게임 역시 비슷한다. 여기서는 사는 공간은 주로 생산품이나 삶의 방식에 따라 나뉜다. 그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계급이 나눠진다고 해야 할까? 이런 미래의 사회는 지금의 사회보다 힘들어 보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결국 하위계층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아무리 큰 통제하에 있다고 해도 그런 사회가 오래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미래의 가상세계

이런 작품들의 가상세계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설명은 없다. 그냥 미래의 한 시점을 봤을 때 이런 곳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한 까닭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상상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로의 격차들이 더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부의 재분배는 확실히 힘들어지고, 그에 따른 각자의 능력은 더욱 격차가 심하게 벌어질 것이다. 모든 지식이나 정보는 공유가 된다고는 느끼지만, 이런 정보 역시 부와 마찬가지로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현재 내가 어디에 속하고있는지 구분을 할수는 없지만, 만약 상위계급으로 갈수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도덕적인 삶이라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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